/비망록 備忘錄 젖은 바짓단에 엉킨 풀과 흙이 더럽게 물들었다. 종례가 끝마칠 때까지 찝찝해도 좋았다. 연필 끝 지우개로 입술을 여러 번 짓이기던 백현은 웃었다. 흐흐 목 안으로 들어서는 웃음을 끝으로 무언가 홀린 것처럼 칠판을 응시했다. 찰랑이던 계곡물 소리가 환청으로 들렸다. 반짝이는 물의 그림자와 햇빛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이파리들은 눈...
/ 비망록 備忘錄 “쟤가 오지랖 부린 거야.” “나 몰라라 간다고 하면 어쩔래.” “변백현, 너랑 다닌다고 오해 안 쌓여.” 경수는 떨어트린 캔버스를 줍기 위해 다시 걸음을 뗐다. 바닥에 검은 먼지가 묻었지만 상관없었다. 털면 그만이었다. 백현 또한 그랬다. 지금 품은 감정 그대로 털면 되는 문제였다. 근데 이상하지, 백현은 그런 경수의 행동에 자신의 모습...
/ 비망록 備忘錄 “아버지가 세신사?” “아니 시인.” 경수는 중학교 졸업 후 가족과 서울로 상경 후 아버지 간병차 공기 좋은 고향으로 다시 내려왔다고 백현에게 말했다. 나머지 아이들은 다른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라 했고 중간 입학절차를 받은 경수는 조금 멀리 떨어진 백현의 학교로 배정받았다고 했다. “시인이면 소설도 잘 써?” “글쎄.” “나 책 읽는 거 ...
/ 비망록 備忘錄 1. 비망록 备忘录 어릴 적 백현의 집 마당 뒤에 잔디 위를 거닐던 동네 꼬마아이들이 셋 있었는데, 누군가 폐가라는 헛소문을 퍼트린 게 화근이었다. 큰 창문에 달라붙어 창가에 하얀 입김이 서릴 때까지 아이들을 보던 백현을 발견한 이후로, 아이들은 폐가에 유령이 나타났다고 소문은 불어났다. 그러다 밤중에는 담력을 쌓겠다며 싸구려 촛대를 들고...
옥오지애(屋烏之愛) 상은 이미 문 밖으로 밀려났다. 다급한 백현의 발걸음에 따라 다다미 바닥의 짚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저번 밤처럼 무작위로 달려들 거란 생각과 다르게 백현은 차분하게 경수를 이끌었다. “입에서 비린내가 날 텐데요.” “그럼 씻을래?” 서랍을 어지럽히던 백현은 보이는 유카타를 꺼내 경수에게 건넸다. 하녀를 따라 들어간 탕 안에 홀로 남...
옥오지애(屋烏之愛) 아버지의 약값은? 또 나의 목숨은? 두 눈이 범 앞에서 파렴치하게 떨리고 있었다. 코를 틀어막아도 들어오는 강한 향에 입이 벌어지고 더운 숨이 나오기 시작했다. 역한 공기였다. 고개를 숙이고 만 경수가 떨리는 두 다리에 괴로워할 때 백현이 말했다. “숲 냄새 풍기는 게, 딱 피스틸에게서 나는 냄새와 똑같아.” 차가운 얼굴이 경수의 목덜미...
부제 옥오지애(屋烏之愛) : 사랑하는 사람의 집 지붕 위에 앉은 까마귀까지도 사랑한다는 뜻으로 지극한 애정을 이르는 말. 1 잠상 潛像 “가자, 경수야.” 비가 억세게도 오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이 비가 오야의 눈물이라고 했다. 눈물이 바닥을 거세게 치면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의 목에 무게 나가는 아날로그 카메라가 걸렸다. 경수는 지팡이 없이 불편한 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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